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춘추시대 말에 공자는 노나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공구’였다. 그는 3살 때 부친을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공자가 15세 되던 해 어머니마저 잃게 된다. 고아가 된 그는 가난하고 낮은 신분 때문에 가축을 돌보는 일과 죽은 사람 장사 치르는 일을 거들며 혼자 살
<지리의 힘>
저자 팀 마샬은 영국<파이내셜 타임스>의 터키 특파원과 외교부 출입기자를 지내는 등, 25년 이상 국제 문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였다. 중동지역을 비롯해 전 세계의 분쟁지역을 현장에서 취재하며 각 지역의 갈등과 분쟁, 정치, 종파, 민족,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지리가 어떻게 수많
고전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한·중·일을 아우르는 동아시아의 한자 문화권 내에서 가장 강한 문화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국가는 중국이고 그 중국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지닌 사상가가 바로 공자이다. 그리고 공자(孔子:B.C. 551~479)의 언행과 일화를 담은 책이 바로 논어이
공자 사상을 바라봄에 있어서 구체적인 禮의 행동 지침까지도 따라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구체적인 禮란 당시 사회를 반영하는 모습이었을 뿐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논어와 같은 고전에서 불변하는 인간관계의 본질 을 다룬 것만을 구별해 낼 수 있
공자의 삶을 살아가는 철칙이라고 할 있을 것이며, 모두가 바라는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그의 사상으로서 중국 문화와 동아시아에 유교로서 끼친 영향력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후세 사람들의 평가는 좋은 부분도 나쁜 부분도 모두
공자나 맹자는 철저한 인본주의자로서 인(仁)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가르침에 있어서도 인간 본연의 존재에 관심을 갖고 있었을 뿐, 초월적 존재나 자연계를 지배하는 절대적 인격신에 의존하여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지 않았다. 공자는 상제(上帝)나 귀신 등에 의존적이던 관심을 인간 자신에게로 돌
공자가 실제로 이말을 했었는지에 관계없이 유학자
들이나 심지어 일부현대인들마저도 일생을 통한 수양의 단계적인 척도가 되고 있다
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공자의 사상에 대해 알아보자.
공자사상의 중심이라고 할수 있는 것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인(仁)이라고 할수 있
다. 즉 자
1. 서 론
중국사회에서 춘추시대가 유사이래 가장 혼란했던 사회라고 한다면 이 시대를 바로잡기 위한 위대한 사상가가 출현하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다. 이 필연적인 역사적 사실 앞에 출현한 사람이 바로 공자이다.
공자의 인간관에 따르면, 인간은 단독적인 존재가 아니며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1. 유가사상
1) 儒의 의미
유교는 공자에 의해서 집대성된 가르침이다. 儒家(유가), 儒學(유학), 이라고도 하며 孔子敎(공자교)라는 말과도 통용된다. "儒(유)" 는 원래 직업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고대 중국에서 "儒(유)" 는 禮儀(예의)를 담당하던 직업으로서 사회의 교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신성하
공자일 것이다. 공자는 춘추말기의 저명한 사상가, 정치가, 교육가이면서 유가학설의 창시자이다. 공자는 관학위주로 되어있던 춘추시대에 유가로 민간을 위주로 한 사학을 개창하면서 일생동안 삼천 여명의 제자를 거느렸고 능통한 수제자도 많이 배출해 낸 훌륭한 교육가였다. 공자는 옛날 성현이나